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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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텔 0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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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 그건 4천오백원 짜리 라니깐? 내 그냥 이천원에 줄게.’

‘형, 그러지 말고, 천오백원만 하자.’

‘안된다니깐. 그거 인쇄된걸 좀 봐라. 천오백짜린가?’

‘나 천오백원 밖에 없어. 그냥 주라.’

‘맨날, 없는 타령은? 알았어, 꼬마, 그대신 이거 시장입구 이발소집 아저씨 한테 좀 전해 줘, 그러면 내 천오백원에 해줄게.’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서 알게 된 아랫동네 짱인 윤태 형은 언제나 나의 보물 창고 였다. 방에만 가 보면, 그 다락방에서 꺼내는 보따리에서는 학교 친구들끼리 돌려 보는 누드잡지 보다 더 끝내주는 잡지들이 수두룩 뻑뻑 이었다. 공고를 나와 세운 상가 에서 일을 하던 그 형의 방은 이제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아련한 추억 같은 그런 곳이었다. 세운 상가와 청계천을 뒤로하는 소규모 인쇄소들은 낮에는 삼류 이발소에 걸음직한 수영복 차림의 여자들만 있는 달력이라든가 포장재 들을 인쇄했지만, 저녁에는 문을 닫아 걸고, 윤전기에 그 시셋말로 뻘건책의 필름을 걸어, 냅다 인쇄를 해서, 새벽에는 재단까지 끝낸 후에 어디론가 바람같이 빼내간다는 것이었다. 형은 세운 상가에서 일하는 이른바 삐끼 였다. 학생들이나 아저씨가 지나가면,

‘책 있어요, 좋은 약 있어요, 한번 보고 가시죠?’

하며, 사람들을 잡아 끄는 그런 일…윤태 형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형의 방에 드나들면서 빨간책을 사러 오는 사람도 나 혼자 였다. 나는 어린 마음에 보다 적나라한 장면이 담긴 잡지를 구해 볼 요량으로 용기를 내어 세운 상가를 나선 것이 그 발단 이었다. 나는 세운 상가와 삼풍 상가의 사이에 널려진 영화배우 판넬을 파는 곳에서 짐짓 판넬을 구경하는 것처럼 뜸을 들이면서 사람이 지나다니는 번잡함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저….저.. 잡지 좀…..’

‘너 중학생이지?’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나는 까까머리이긴 했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나팔바지에 남방의 윗단추를 세개씩 풀어 헤쳐서 제깐에는 고등학생처럼 보일 거라고 단정하고 있었는데….

‘돈은 얼마나 있냐?’

‘이천오백원, 아니 삼천원 있는데요?’

‘알았어, 이리 따라 들어와 봐.’

대개 잡지만을 전문으로 파는 곳보다 그 영화 배우들의 판넬을 파는 곳의 뒷 켠에는 더 끝내주는 잡지들이 많았다. 이른바 무작시리 이쁜 금발머리 여자들이랑 말 좇만한 좇대가리가 수두룩 뻑뻑하게 나오는 스웨디시 에로티카의 복사본을 파는 곳이 그곳 이었기에…대개 허슬러나 플레이보이 잡지들은 선전만 덤태기로 있고, 여자들의 사진도, 보지는 뵈지도 않고, 나체의 곡선미 만을 강조한 잡지들이 대부분 이어서 몇번 보다 보면 그게 그거라 흥미를 잃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그 뻘건책은 내용부터가 달랐다. 장면마다 한가지의 주제로 간단한 이야기가 영어로 적혀 있는 그 책은 섹스의 흥미로운 관점은 둘째 치고, 그 짧막한 이야기와 걸맞는 여자들의 쾌락에 짓눌린 표정하며, 그 상황의 설정을 짧은 영어 실력으로나마 해석하는 그 순간, 좇대가 벌떡 이면서 기어이 바지를 내리고 딸을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조화로움이 있었다. 나는 형이 내미는 잡지들을 눈이 휘둥그래져서 살펴보고 있었다.

‘빨리 골라, 요새 짭새들이 얼마나 많이 뜨는데….’

‘이거 하나 주세요.’

‘나는 그 중에서 인쇄가 가장 화려한 것을 골랐다.

‘딴 것도 있는데, 나중에 돈 모아서 사. 8미리 필름도 있고, 동물이랑 하는 것도…., 너 참, 만화는 안 보냐?’

‘만화요?’

형이 잠깐 보여주는 것은 한글로 된 만화 섹스책 이었다. 조잡한 그림에 대사도 무슨 씹,좇 어쩌구 하는 되도 않는 스토리의 책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인기가 꽤 있다고 했다. 그러나, 끝끝내 표지만 보여주면서 그 비닐포장도 뜯지 않는 두꺼운 책은 정말 비싼 것이어서 나 같은 학생들이 돈을 모아도 사기 힘든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을 나누어서 인쇄한 게 바로 네가 산 거야. 이 책 하나로 네 것 같은 뻘건 책이 10종류는 넘게 나온 다니깐, 그러니 가격을 대강 짐작하겠지?’

나는 돈을 모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자, 대뜸,

‘너 어디 사냐?’

내가 사는 동네를 대자, 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쭈구리, 삐까뻔쩍 부촌에 사는 구만, 철길 건너, 그 아파트 촌? 난 뚝방 아랫동네야, 이거 반갑네.’

새로이 들어선 아파트 촌을 그 동네 사람들은 언제나 삐까뻔쩍 부촌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보기 좋은 동네에는 예전에 살던 곳과 달리 그 흔한 만화가게 하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만화를 보러 버스 정류장으로 다섯개나 지나서 있던 그 뚝방길 아랫동네를 줄창 다니고 있었기에 윤태 형과의 조우는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책을 누런 봉투에 담아 쥐고 나오는데, 형이 나에게 작은 소리로 소곤댔다.

‘이제 이리로 오지 말고, 우리 집으로 곧장 와. 내가 잘 해줄게. 너 뚝방길 옆에 만화가게 알지? 그 옆에 분식집이 우리집이야. 내 이름은 이윤태, 꼬마, 넌 이름이 뭐냐?’

나는 이름을 얘기 했지만 언제나 윤태 형은 나를 꼬마라고 불렀다. 그래도 난 그게 좋았다. 형의 방에 가면, 진기한 책을 사기도 전에, 실컷 좇을 부풀리며 보다가, 집으로 달려와, 씻지도 않고, 방금 보았던 장면들을 연상하면서, 책상 옆에 몸을 기대어 무릎을 꿇은 채, 신나게 자위를 하는 그 즐거움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뿌듯함이 넘쳤다. 그걸 형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구지 책을 사라고 강요도 하질 않았고, 방에 놀러 오는 나를 꼬마라고 부르면서 신나는 섹스 얘기며, 잡지 얘기들로 나의 상상력은 충만할 대로 충만 했었으니까. 그 당시 형의 다른 고객은 이발소 아저씨 였다. 점잖은 외모에 말소리도 고만고만한 그 아저씬, 형의 오래 된 단골로서 이발비 대신에 책을 갖고 가면 형에게 풀서비스를 해준다고 했다. 퇴폐영업이 이발소에 서서히 고개를 들 무렵, 그 아저씨는 이발소에 들어와 안마와 마사지를 받고 가는 고객들을 상대로 공짜로 건진 뻘건책을 고가로 되 팔았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주위의 부러움을 받으며, 성업을 해오고 있던 곳이었다. 나는 가끔 형의 부탁으로 책을 배달했었는데, 나에게는 그 풀서비스 란 것 대신에 언제나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곤 했다. 기존의 구조물에다가 퇴폐 영업을 해야 했기에 이발소에서는 찍찍이 라고 불리 우는 임시커튼을 사용 했었다. 이발을 하러 들어오는 손님에게 우선 이발만 할 것이냐, 면도나 안마도 받을 것이냐를 물어, 주인 아저씨는 자리를 일단, 안마 손님 위주로 구섞진 곳을 배정한다. 머리만 깎는 손님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게 되고, 어린 손님들도 물론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안마를 받는 손님은 아가씨들이 냉큼 들러붙어 의자를 뒤로 휘까닥 재끼고 얼굴에는 물수건을 덮어 씌운 뒤에, 팔과 다리를 안마하다가는 곧바로 그 찍찍이 커튼을 갖고 와서 손님의 의자 주위로 둥그렇게 쳐댔다. 어째서 찍찍이라고 하냐면, 언제든지 커튼을 걷을 수 있도록 천장과 커튼에 겨울에 입는 파카의 손목을 죄는데 쓰이는 찍찍이를 달아서 생긴 이름이었다. 설사 단속이 뜨더라도 기존의 거튼 처럼 레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천장에 띄엄띄엄 그 찍찍이의 한쪽 면이 붙어 있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천장에 더러운 지꺼기가 붙어있는 정도로 밖에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도 이발을 하러 갔지만 그 쳐진 커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노상 궁금했었다.

‘형, 이 책, 이발소 아저씨 갖다 주면 되지?, 근데, 그 찍찍이 치고서 그 안에서 도대체 뭘 하는 거야?’

‘꼬마, 너도 크면 알게 돼. 쬐그만 게 별걸 다 알려고 그래?’

‘나도 알건 다 아네, 그 안에서 빠구리 하는 거지?’

‘어쭈구리, 통박 한번 그럴싸하게 잡는데? 야, 너 꼭 우리 아부지 같다 야.’

나는 그 날, 책을 배달하면서 우쭐해진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른들이 안마 한답시고 커튼 치고 그 짓거리를 한다는 것을 넘겨짚은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기에…형이 책을 갖다 주라고 말한 날은 비가 부실부실 내렸다. 가뜩이나 무더운 8월에 내리는 잠깐 잠깐의 소낙비는 더위를 씻어 내리기는 커녕, 오히려 무더위를 부추키는 셈이 되었다. 그러나, 그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형과 함께 라면을 끓여먹으며, 방안에서 뒹굴며, 잡지를 보고 있었는데, 밖에서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형이 냉큼 잡지를 치우며, 다락으로 그 무더기를 잡아 올렸다. 나도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서 자리에 벌떡 앉았는데, 그때, 벌컥 문이 열렸다.

‘엄니는 워디 간겨?’

‘어버지 요셨슈? 엄니, 요 앞에 민찌 사러 가셨는디유, 만두 속이 없다고 설랑….’

쾅 하고 문을 닫으며, 나가는 그 분은 형의 아버지 셨다. 온 얼굴에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하며, 번뜩이는 눈매가 보통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다. 자리에 서서 덜덜 떨고 있는 형은 한 숨을 푹 쉬면서 자리에 다시 앉았다.

‘와, 대빵 무섭게 생겼다. 형, 아부지. 뭐 하는 사람이야?’

‘응, 너 지관이라고 아냐?’

‘지관이 뭔데?’

‘응, 그런거 있다니깐, 죽은 사람 묘자리도 봐주고, 사방팔방에서 뻗쳐 들어오는 길흉화복을 알아봐 주기도 하고, 뭐 그런 일….’

‘꼭 생긴 게 싸스콰치 같이 생겼네.’

그 당시 외화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괴물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응, 산을 타고 다니며, 방방 곡곡 다니는 게 일이다 보니 그렇지… 그 덕에 엄니만 죽어라고 분식집 일에, 만두 찜통에 매달려 고생 혀시지만….’

‘근데 어떻게 오셨데?’

‘모르지, 이렇게 오시는 건 평소에 없던 일인데… 얼릉 그 책 갖고 오늘은 가라. 이발소 아저씨에게 꼭 갖다 줘야 한다, 알았지?’

나는 형의 다짐에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허름한 옷에 망태기를 걸머지고 분식집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계신 형의 아버님은 그 모습이 무슨 도사 같은 냄새조차 풍기고 있었다.

‘윤태 이놈, 여적까지 그 기집년 고랑 탱이 찍어다 팔아 번지는 일에 손을 못 떼고 설랑? 너 원제 사람 될겨? 지금 시국이 여느 땐데, 그 지랄이냔 말여?’

‘그럼 어쩍혀유, 목구녕이 포도청 인디, 아부지는 허구헌날 밖으로 돌고, 엄니는 이 뙤약볕은 고사하고, 만두 찜통에 들러 붙어 쌩땀 흘리고 계시는디, 지라도 벌어야 쓰지 워쪄겄시유? 시국은 또 무신 말 이래유? 우리 같이 못사는 것들이 시국은 알아서 뭐 한당게요?’

나는 오도가도 못하고 두 사람의 입씨름을 듣고 서 있었다.

‘허긴, 니가 알아 뭐에 쓰겄냐! 어여 군에나 댕겨 와. 그리고 나면, 내 뒤에 따라 붙어 지관 일이나 배우 랑게.’

‘죽었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 허겄시유. 그 쌩고생을 하라 구유? 난 못혀유.’

‘니도 눈깔이가 있으면 봐라. 저게 사람이 헐짓잉가 말이여!’

윤태 아버님이 가리킨 것은 마침 TV 에서 나오는 5시 뉴스 장면 이었다. 그 장면은 시청 앞 분수대를 비추는 장면 이었는데, 나나 윤태 형이나 무엇을 보라는 말씀이신지 그 당시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나의 등을 떠미는 윤태 형의 손길을 뒤로 하면서 분식집을 나오는데 쓸쓸히 혀를 차시는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걸 기념일 꽃장식 이라고 하는 썪어빠진 인간들은 대체 누구란 말여? 누굴 죽여도 한참을 죽일거인디….’

나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오면서 잡지가 젖을 까봐 가슴에 품고 오느라 온몸이 홈빡 젖고말았다. 몸도 오실오실 떨리기도 하고 해서 나는 이발소로 가려다가 그냥 집으로 향했다. 집안에 들어서면서 손에 쥔 것이 무어냐고 물을 수도 있기에 나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현관 앞에서 잡지를 품속에 넣어 바지춤에 찔러 넣었다. 옷이 비록 젖기는 했지만 밖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냉큼 방으로 들어와 잡지를 꺼내서는 나만이 아는 장소에 몰래 넣어두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그러나, 그 날 저녁부터 온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개새끼도 안 걸린 다는 여름 감기를 되게 앓고 말았다. 이틀인가를 흠씬 앓고는 비실비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니 있자니 이발소 아저씨에게 갖다 주어야 할 잡지가 생각났고, 비로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안에서 그 잡지를 꺼내서 다시 바지 춤에 찔러 넣고 윗도리를 챙겨 입었다.

‘어딜 가게?’

방학동안 건들대던 나에게 어머님이 대뜸 물으셨다.

‘이제 개학도 가까웠는데 머리나 깎을라구요.’

‘생각 잘 했네. 앓고 나더니 이제 학교 갈 때가 다 된 것도 알고….’

나는 어머님께 돈을 받아 쥐고, 집을 나섰다. 그 날은 무척이도 더운 8월의 중순 이었다. 날짜에 대한 감도 없이 비척비척 걸으면서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겨우 이발소로 도착했지만, 이발소는 닫혀 있었다. 이발소 아저씨는 낮잠을 잔다든가 아니면, 점심을 먹으러 갈 때면 언제나 이렇게 임시휴업 딱지도 없이, 검은 커튼을 안으로 치고 문을 잠근 채 외출을 하시곤 했었다. 그러나, 시간은 아침 나절을 훨씬 지나고 있었고, 안에 누가 있다는 것은 덜덜 거리면서 돌아가고 있는 고물 에어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발소 안에는 누군가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기척이 없었다. 나는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검은 커튼이 삐끔히 열리면서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저씨 이거요!’

나는 손에 든 누런 봉투를 내 보였다. 그러자, 커튼을 조금 걷고서 문을 조금 여신다. 나는 봉투를 건네기 전에,

‘근데, 저 머리 깎아야 되요. 내일 어디 가거든요.’

내가 그렇게 얘기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른바, 이발소 안에서 벌어지는 그 빠구리의 현장을 멀리서 나마 접하고 싶은 욕심 때문 이었다.

‘내일 깎으면 안되겠냐?’

‘저 내일 시골에 내려가서 개학 전에 올라 온다니깐요? 안 그러시면 이 책, 그냥 윤태 형한테 돌려 주죠 뭐.’

‘고놈 참, 얼릉 들어와.’

아저씨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시더니 냉큼 문을 안으로 닫아 거시고, 커튼을 치셨다. 이발소 안은 칡흙 같이 어두웠지만 아침부터 왠종일 돌아가는 에어컨 덕분인지, 안은 그토록 시원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구섞에는 벌써 찍찍이가 쳐져 있었다. 나는 봉투를 옆 테이블에다 내려놓고, 어서 빨리 깎아 달라고 재촉했다. 실내가 시원했음에도 아저씨는 런닝에 반바지 차림이셨다. 나를 자리에 앉히고, 아저씨는 흰 천으로 된 가리개를 두르시고, 재빠른 솜씨로 바리깡을 집으셨다. 중학생 머리라고 해봐야 별로 깎을 것도 없고, 이부가리 쯤으로 밀어댄 후에, 면도로 주변만 훑어주면 되기 때문에 별다른 과정은 없다고 봐야 했다.

‘으흠, 으흐흐흠….’

찍찍이 커튼 너머로 들리는 남자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자, 아저씨는 헛기침을 한번 하시더니만 라디오를 켜시고, 볼륨을 크게 올리셨다. 아마도 커튼 안에서의 빠구리 소음을 줄이려는 의도 였으리라. 나는 바리깡으로 머리를 미는 동안 꾸벅 대면서 조는 시늉을 했다.

‘허 이놈 벌써 조네 그랴.’

아저씨는 비누거품을 내서 내 뒷 목덜미와 구렛나루 근처에 바르시고는 바로 면도를 하셨다. 조금 더 오래 하시지 라는 생각이 들었건만, 아저씨의 손놀림은 빠르기 그지 없었다. 면도가 끝나고, 깎은 머리털을 털어내시는데 나는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다.

‘아저씨 머리는 제가 감을 께요.’

‘그래 줄래?’

흔쾌히 대답하시는 아저씨의 음성에 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머리를 감으러 구섞에 있는 세면대로 다가갔다. 평소 같으면, 아가씨나 아저씨께서 반드시 머리를 감겨 주셨지만, 오늘만은 특별했다. 아저씨는 바닥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치우시기가 무섭게 스팀수건 여남은 장을 들고 찍찍이 커튼을 열고 그 안으로 사라졌다. 나에게는,

‘어여 머리 감고 가그라, 알았지?’

그러나, 나는 대강 머리 주변에 묻은 면도 자욱 만을 지우면서 물은 틀어 놓았다. 나는 옆으로 비스듬히 서서 커튼의 안쪽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했지만 보이질 않았다. 다만 그 안에 있는 세 사람의 목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김 사장, 새로 온 이 아가씨, 정말 끝내주네. 안마도 그만이고….’

‘웁웁웁…..’

‘제가 그러기에 문을 닫아걸었죠, 왜 그랬겠어요? 어휴, 이 엉덩이 좀 보세요…’

‘그래, 더 자주 와야지 안되겠네…이렇게 물 많은 여잔 처음 봐.’

안에서는 소리를 죽인다고는 했지만 그 세 사람은 틀어져 있는 라디오의 볼륨을 너무 믿고 있었다.

‘내 것도 한 물건 하는데, 김 사장 것도 못지 않구만.’

‘우리, 억윽, 미스 한이 손님 위에서 서비스 하면서, 우휴휴, 이렇게 빨아주는 걸 본적이 없었는데, 왠 일인지 모르겄네. 사장님 오늘 미스 한에게 팁 톡톡히 주셔야 할걸요?’

‘그래야지, 암 그래야지…. 어구구, 좇 터지네, 좇 터져… 이렇게나 쪼여대나?’

이발소 의자를 뒤로 재낀 뒤, 손님을 눕히고, 아가씨는 그 위에 좇을 타고 놀면서, 옆에 둘러선 아저씨의 좇을 빨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서둘러 자리를 빠져 나와야만 했다. 섭섭한 마음에, 돌아서 나오는 나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미쳐 치우지 못한 내가 갖고 온 누런 봉투였다.

‘아저씨, 저 그만 가요! 돈은 탁자에 놔 뒀어요.’

‘그래, 잘 가라!’

나는 슬그머니 그 봉투를 들고, 나와보지도 않는 찍찍이 커튼 안의 아저씨에게 혀를 내보이며, 이발소를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계속해서 라디오 에서는 노래 대신에 뉴스가 흘러 나오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질 않고 있었다. 나는 더운 여름날의 땡볕도 아랑곳 하질 않고, 전력을 다해 집으로 뛰어 달아났다. 커튼 안의 섹스로 말미암아 나를 쫓아 올 엄두도, 여유도 없을 것이 분명 했으면서도, 그 당시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것은 굉장한 흥분과 더불어 죄책감이 동반되는 나쁜 짓임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나는 집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방안으로 뛰쳐 들어가 문을 잠궜다. 숨을 몰아 쉬면서도, 어째서 아픈 동안 에라도 그 봉투 안의 잡지를 들여다 보질 않았는가를 후회하면서…그렇지만 않았어도 오늘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손 치더라도 그런 돌출적인 발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 들어 왔다. 게다가 그렇게나 잘해주던 윤태 형은 무슨 면목으로 대할까 하는 복잡함이 머릿속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욕구는 이성을 앞서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봉해진 누런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내가 이제까지 몰 수 없었던 희한한 사진이 모아져 있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표지에는 사진첩이라는 제목만이 씌여 있었다. 첫 장을 열고 놀란 것은 이제까지 보아오던 외국 여성의 섹스 장면이 아니라 어떤 것은 아주 오래 전에 찍은 것 같은 흑백사진과 더불어, 사진의 각도도 조잡한 것이 일반인이 찍었다고 밖에는 믿을 수 없는, 그런 사진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도, 다른 아시아의 여성들도 아닌, 한국 여성을 상대로 찍은 섹스책 이었다. 분명히 자신이 자동 셔터로 찍지 않은 것이 분명한 자세의 그런 사진들, 그 당시, 그런 사진을 한국 여성이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은 나로선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 같은 모습, 언뜻 보면 누님 같은 얼굴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마주칠 것 같은 그런 여자의 일그러진 얼굴과 입 사이로 쳐 박힌 좇대가리들…나는 저절로 침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갔다. 결코 손에 닿을 수도 없을 뿐더러, 실현 불가능한, 잡지 속에서나 대할 수 있는 외국 여자의 보지와 달리, 요염함 이라든가, 그 모습의 색스러움이 없다손 쳐도, 바로 근처에서 언제나 잡힐 수 있을 것 같은 한국 여자의 섹스 사진은 다른 여타의 잡지보다 나를 서너배, 아니 그 이상의 흥분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나는 침대 위에 잡지를 올려 놓고, 바지를 내렸다. 한면 가득히 펼쳐지는,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섹스의 파노라마가 가득히 눈 앞을 아른 거렸고, 감히 꿈꿀 수도 없었던 한국 여성의 섹스 사진은 그 현실감이 너무도 뚜렷해서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 손에 들려진 내 좇은 몸부림을 쳤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진 속의 여자가 어머님 인양, 누님인양, 이발소의 아가씨 인양 상상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속 얼굴 윤곽의 동질성으로 말미암아 나는 머릿속으로, 어린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내 주위에 가까이 있는 어떤 여성이라 할지라도 나와 섹스가 가능 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에 빠져, 근친이건, 난교건 간에 그 잡지의 사진에 흠뻑 빠져서 온갖 상상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잡지는 무척이나 두꺼웠고, 그 인쇄 상태는 잉크냄새가 확연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 당시, 나는 자위를 할 때, 많은 사진들 중에서 사정의 대미를 장식할 사진을 골랐었다. 그냥 훑어 지나 가면서도 꼭 요 사진을 중점적으로 용두질을 해서 좇물을 싸야지 하는 심정으로, 다른 사진을 둘러보며 좇을 흠씬 키워 놓고는, 당첨 사진을 향해 좇부리를 들이대며, 다시금 들추어 보던 버릇이 그것 이었다. 중간 쯤을 들추다가 전면을 도배한 사진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여리게 보이는 한 여성의 보지를 뒤에서 박아대는 모습 이었는데, 쑤셔 박는 남자를 뒤로 돌쳐 꼬나보는 그 여인의 눈매에 나는 완전히 매료된 것이었다. 게다가 그 여인의 보지 속에는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의 시커먼 흑인의 좇이 박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기지촌 주변이나 이태원 근처의 사창가에서 찍혀진 사진 같은 분위기 였다. 그 여인의 눈매에서는 많은 것을 내뿜고 있었다. 보지가 째질 것처럼 아프지만 그 씹안을 꽉꽉 메꾸어 주고 있는 그 좇대가리의 튼실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통과 쾌감이 교차하는 그 눈빛. 나는 그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손은 벼락같이 좇대를 주무르고 있었다.

‘윽윽…..썅년…..’

지금도 생각해 보지만 어째서 내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바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두번 이나 연속으로 그녀의 눈매가 나를 꼬나 본다는 상상 속에서 용두질을 해댔다. 기어이 사정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나는 바닥에 쏟아져 있던 내 좇물에 미끈하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찝찝하기는 했지만 감기를 심하게 앓은 뒤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나는 그 사진에 빠져 두 번씩 자위를 했던 것을 그제서야 후회했다. 머리가 핑핑 돌면서 눈 앞이 노래졌고, 그때 밖에서 TV소리가 커지면서 어머님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났다.

‘네 나가요!’

나는 휴지를 뽑아 들고 바닥을 대강 닦은 뒤에 잡지를 이불 속에 숨겼다. 어지럼증이 가시질 않고 있었고 눈 앞은 노래기가 아까와 마찬가지였지만…

‘막내야, TV좀 봐라, 큰일났다.’

아버님께서는 이리저리 TV를 돌려 보라고 하셨다. 정규방송이 중단된 채로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815기념식장의 모습과 괴한의 총격이 있었다는 뉴스만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어지럼증을 견디질 못하고 자리에 주져 앉아서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고…

‘육여사가 다치셨는 모냥인데….’

아버님께서는 나에게 AFKN(미군방송)을 틀어보라고 하셨다. 국내 방송과 다르게 AFKN에서는 기념식장에서의 총격장면을 화면 하단에 초단위로 보여주면서 천천히 슬로우 모우션으로 방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면도 얼마 있질 않아서 중단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 이지만 정부의 요청으로 그 방송을 일부 내보내다가 중단 했다고 들었다. 오후로 접어 들면서 육영수 여사의 피격소식은 기정사실화 해서 방송에 내보내 졌고, 길거리의 시민들에게 리포터들이 나아가 육여사의 쾌유를 빈다는 육성을, 방송을 통해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감기 뒤끝에 무리한 자위로 말미암아 마루에 드러눕다 시피 하면서 눈 앞의 현기증을 가까스로 참아내면서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4시를 넘기면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눈을 의심하면서….나는 아까의 현기증이 심해져서 이게 큰 병이 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눈 앞이 노래져 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눈으로 부터가 아닌 하늘로 부터의 변화였다. 모든 사물이 공포스러울 정도의 노란 색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그것은 노을이라고 부를 수 조차 없었다. 구름 낀, 늦은 오후의 하늘은 그야말로 노란 조명으로 온 천지를 감싸 안는 것처럼 샛노란 색감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짓눌러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마치 영화처럼 TV에서는 육영수 여사의 초상화가 비추어지며, 수술도 소용없이 괴한의 총격에 서거하셨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하늘은 해가 질 줄도 모르고 노란 색을 지랄하듯이 뿜어내고 있었고, 그 광경과 더불어 TV를 보고 계시던 어머님과 아버님은 조용히 눈물을 훔치셨다. 나는 갑자기 하늘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한 일을 알고나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어디 가냐고 물으시는 어머님께 대답도 하질 않은 채, 잡지를 넣은 그 누런 봉투를 손에 쥐고, 형의 집으로 냅다 달렸다.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 노란 빛은 나의 몸 속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형의 집 앞에 도착 할 때까지, 나는 그 어지럼증을 한번도 느끼질 않고서 한달음에 가고야 말았다. 분식집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만 형의 아버님 만이 그 더러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꺼이꺼이 곡을 하고 계셨다. 나는 멈칫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형이 벽을 보고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었고…

‘꼬마 왔냐?’

‘형, TV봤어? 육 여사님이 돌아 가셨데…’

‘근데, 꼬마, 그 옆에 그건 뭐냐?’

‘응, 그날, 비 맞고 가다가 감기가 걸려서 이발소 아저씨께 못 전해 드렸어. 형이 좀 전해줘. 나 이제 개학 하잖아!…근데 왜 아버님이 저렇게 울고 계신데?’

‘국모가 돌아가셨으니 그렇지. 나도 이젠 아부지 말을 따라야 헐 것 같다. 그날, 꼬마, 너 왔을 때, 울 아부지가 허신 말씀 기억 나냐?’

‘응, 뉴스 화면 말이야?’

‘그래, 아부지가 그때, 815 기념 행사랑, 지하철 1호선 개통을 축하한다는 그 꽃 광고판을 보시고 하신 말씀 말이야.’

‘근데 그게 왜?’

‘그 꽃으로 장식된 광고판에 무신 꽃이 쓰였는지 아냐?’

‘몰라, 그건 왜?’

‘흰색과 노랑색 국화 였대지 아마.’

‘국화가 어때서? 색깔 맞출려고 그런 거 아냐?’

‘국화는 사람 죽었을 때나 쓰이는 조화야, 알겄냐? 그런 조화를 무턱대고 써 댔으니, 누가 죽어도 크게 죽어 나갈 거라고 아부지가 그러셨거덩.’

나는 형의 아부지 조차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조화를, 사람이 죽어 나갈 거라는 하늘의 암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나는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더 있었다가는 내가 이발소에 주어야 할 그 사진을 빼돌린 것 조차 알아내실 것 같았기에…나는 집으로 기겁을 하며, 달려오는 도중에도 내 뒤꼭지를 따라오는 것만 같은 하늘의 노란빛에 기가 질려 버리고 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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